1961년 대홍수로 시 전체가 물에 잠겼던 경북 영주를 구한 박정희 대통령 1961년 7월 11일 새벽3시부터 무려 5시간 동안 영주시 일대에 약 337mm의 집중 호우가 쏟아지면서 소백산 원류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삽시간에 풍기읍 남원천을 가득 메웠다. 이어 영주읍 시가지를 감아 돌아 흐르는 노도 같은 홍수의 물길은 서천에 이르러 오전 8시쯤 구성공원 불바위 밑 북쪽 제방을 붕괴시키면서 인구 3만 2천명의 영주 시가지의 3분의 2가 완전침수 되는 등 온 시가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이른바 ‘영주 대수해’의 시작이다. ▲ 재앙의 시작, 새벽시간대 삽시간에 잠긴 영주시가지 아침밥을 준비하던 주부들은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가재도구를 다 버리고 노부모와 아이들을 챙겨 업고 철탄산과 구성공원으로 피신했다...
8일 수도권과 중부지방에 시간당 많게는 100㎜ 이상의 물폭탄이 쏟아지는 폭우로 곳곳에 침수와 정전 등의 피해가 잇따라 발생되고 있다. 서울, 경기, 인천을 중심으로 오후 9시 호우경보가 발표되고 매우 강한 비가 집중되자 오후 9시 30분 중대본 비상 1단계를 2단계로 격상하고 위기경보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발령했다. 중대본은 산간 계곡, 하천변, 댐 하류 등에서 대피를 안내하고, 지하차도·둔치주차장, 저지대 등은 선제적으로 통제할 것을 지시했다. 이날 오후 1시 30분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역 인근 보도에는 가로 1m, 세로 50㎝, 깊이 60㎝의 싱크홀이 발생하기도 했다. 강남역 일대 도로가 모두 물에 잠겼고, 양재역 일대도 차량 바퀴가 일부 잠길 만큼 물이 차올랐다. 지하철 운행도 곳..